ㅇ고교의 2학년인 나혜는 우등생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공부 잘하고 싹싹한 그녀를 특별히 총애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항상 자신감이 넘치고 기고만장했다.
선생님의 눈이 없을 땐, 다른 애들을 깔보거나 업신여기기 일쑤였다.
때문에 같은 반 친구들 중에서 그녀를 좋아하는 애는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그녀를 은근히 따돌렸지만, 나혜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어느 선선한 가을 날이었다.
그날 5교시는 담임 선생님의 수업인 수학시간이었다. 점심 시간 이후라 가뜩이나 졸릴 시간인데다,
창문 너머에서 신선한 바람도 불어오자 학생들의 태반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혀를 차며 학생들의 졸음을 깨우기 위해 몇몇 학생들을 나오게 하여 문제를 풀도록 시켰다.
그 중엔 나혜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나 둘 문제를 풀고 자리로 들어갔다. 비교적 간단한 문제들이라 틀린 아이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나혜만 문제를 잘못 보고 푸는 바람에 틀려 버렸다. 평소 나혜의 실력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선생님은 나혜의 문제를 풀이해주며 이런 실수는 바보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면박을 주었다.
앞으로는 같은 실수를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나혜는 수치심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랐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나가자,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아까의 나혜의 일로 수군거렸다.
모두 나혜에 대해 트집잡을 거리가 생겨 신이 난 모습이었다.
나혜는 화가 났다.
그깟 문제를 틀렸다고 아이들 앞에서 자신을 면박을 준 선생님이 미웠고,
옳다구나 자신을 씹어대는 반 아이들도 짜증났다. 그리고 그 문제를 틀린 자신에게도 분노가 치밀었다.
집에 돌아간 뒤에도 나혜는 낮의 그 수치스러웠던 일을 계속 곱씹고 있었다.
그 일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문제를 잘 못 본 자신의 눈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내 잘못이 아니야. 문제를 잘못 본 내 눈 탓이야. 눈 때문이라고!!!!!"
무언가 찢어지는 끔찍한 소리가 들리더니, 책상 위에 있던 그녀의 문제집이 붉게 물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나혜의 반 친구들은 두려움에 몸을 떨어야 했다.
나혜가 자신의 눈을 칼로 파내고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그 후로 칠판에 적힌 수학문제를 제대로 지우지 않고 내버려두면,
어느샌가 여학생 귀신이 그 앞에 나타난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 귀신은 칠판에 쓰인 문제를 노려보고 있지만, 그 눈동자는 퀭하게 비어있다고 한다.
숨도 쉬기 힘들게 더운 날씨였다. 매미는 또 왜 저리도 울어대는지..
여름 방학 내에 학교 구관과 신관을 연결하는 다리 공사를 끝내기로 한 작업반장 입장에선 그 모든 것이 짜증났다.
그가 보기엔 별 실용성이 없어 보이는 공사였지만, 돈 받고 하는 일이라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한낮의 태양이 이글거리며 맹위를 떨쳤다. 달궈진 시멘트 바닥 위로 아지랑이가 아른거렸다.
인부들은 다들 더워서 일을 못하겠다며 아우성이었다.
배 째라는 식으로 속 편하게 나오는 그들이 얄밉기도 하고 한 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하긴 자기가 생각해도 덥긴 더운 날씨였다.
어차피 일의 능률도 나오지 않는데다, 혹시라도 더위에 쓰러지는 사람이 나오면 더 골치 아프겠다는 생각에
작업반장은 낮잠을 지시했다. 모두가 그늘에서 단잠을 즐기기 시작했다.
다들 꿀 같은 오침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작업 현장 쪽에서 우지끈하는 소리가 들렸다. 안정망을 쳐놓은 몇 개의 지지대가 쓰러진 것 같았다.
한참 잠에 취해있던 인부들은 곁눈을 떠서 살짝 보고는 대수롭지 않게 다시 잠을 청했다.
그러나 작업반장은 속 편하게 계속 잘 수가 없었다.
형식적인 안전망이긴 했지만,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자기 책임이 될 것이었다.
그는 인부들에게 가서 안전망을 확인하라고 난리쳤지만 아무도 들은 척하지 않았다.
속이 탄 작업반장은 혼자라도 수습할 생각으로 지지대가 쓰러진 곳으로 향했다.
인부들은 일어날까 말까 하다가 작업반장이 현장으로 향하자 옳다구나 하는 생각에 더 누워있었다.
그런데 계속 들려오던 작업반장의 욕설이 뚝 끊겼다.
누가 깨운 것도 아닌데 인부들은 일제히 일어났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작업반장은 끔찍한 광격 앞에 얼어붙어 있었다.
지지대가 쓰러진 곳에는 여자의 몸뚱이로 보이는 것이 널브러져 있었다.
머리가 없는 여인의 시체였다.
작업반장과 인부들은 그녀가 근처 식당에서 일하는 여자임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잘린 목에선 검붉은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작업반장과 인부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부산하게 움직였다.
손발이 그렇게 잘 맞아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잘려나간 머리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들은 머리가 없는 시체를 시멘트 속에 굳혀, 폐기물 처리장으로 보냈다.
현장은 완벽하게 처리된 것처럼 보였다. 그 자리의 사람들 말고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그 사건 이후 공사 현장에서 갖가지 사고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인부들이 다치는 일도 점점 많아졌다.
때문에 공사는 점점 더 늦어지고 인부들 사이에 귀신이 돌아다닌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작업반장은 불같이 화를 내며 인부들의 입을 단속시켰다.
그러던 중 4층에서 떨어진 도르래에 깔려 인부 한 명이 압사 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시체는 전신이 으깨졌지만, 이상하게 머리만은 멀쩡했다.
겁에 질린 작업반장은 결국 경찰에 자수했다.
그 뒤로도 몸이 없는 머리가 나타난다는 소문은 계속되었지만 공사는 꾸역꾸역 끝이 났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끝난 개학실 날, 화단에서 여인의 머리가 발견되어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여인의 머리는 그 더운 여름 날씨에도 불구하고, 몸에서 떨어져 나간 순간의 모습 그대로 생생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인 연선은 요즘 학교를 가는 일이 너무 즐거웠다. 새로 부임한 국어선생님 때문이었다.
큰 키에 수려한 외모를 가진 그 선생님은 훈훈한 외모만큼이나 성격도 좋았다.
수업 중에 화를 내거나 혼내는 일도 거의 없었고, 항상 조용하고 차분하게 아이들을 가르쳤다.
저번에 연선의 작문 과제를 보고 감수성이 풍부한 것 같다고 칭찬을 해줄 때, 연선은 두근거림을 느꼈다.
얼마 전에는 안경이 바뀐 것을 알아보고, 새 안경이 더 잘 어울린다는 얘기를 해준 적도 있었다.
연선은 그 선생님의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수줍고 행복했다.
사실 연선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아니, 평범보다도 좀 많이 부족하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평가일 것이다.
얼굴이 예쁘거나 귀여운 것도 아니었고, 공부를 잘하거나 운동 실력이 뛰어나지도 않았다.
몇 년 전부터는 살도 엄청 쪄서, 이제는 엄마까지 살 좀 빼라며 구박을 할 정도였다.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거나, 선생님들에게 예쁨을 받는 학생도 아니었다.
그저 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조용한 학생.
그것이 연선에 대한 주변의 평가였다.
연선 역시 그런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연선은 선생님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혼자만 간직하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커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선생님과 사귄다거나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을 뿐이었다. 용기를 낸 그녀는 진솔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다.
다음 날 국어 시간이 되었다. 연선은 출석부에 자신의 편지를 살짝 끼워두었다.
직접 얼굴을 보고 전할 용기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수업시간이 다가올수록 그녀의 심장은 세차게 뛰었다.
수업 종이 울렸다.
그런데 교실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국어선생님이 아닌, 연선이 제일 싫어하는 체육선생님이었다.
그는 국어선생님이 좀 늦어서, 자신이 자습 감독을 할 것이라고 했다.
연선은 식은 땀이 났다.
설마 출석을 부를까? 편지를 발견하진 않겠지? 모른 척해주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은 잔혹했다.
출석부를 열어 본 체육 선생은 연선의 편지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소리 내어 읽었다.
아이들이 키득거리는 소리와 야유가 교실을 떠들썩하게 채웠다
체육선생은 못생기고 뚱뚱한것들도 할 건 다 한다며, 연선을 비웃었다.
그때 국어선생님이 들어왔다. 연선의 눈에는 그가 마치 구원자처럼 보였다.
그는 이상한 교실의 분위기에 어리둥절해 했다.
체육선생님이 웃겨 죽겠다는 얼굴로 그에게 다가가 연선의 편지를 내밀었다.
연선은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가 이 상황을 진정시켜 주길 바랐다.
드디어 편지를 다 읽은 선생님이 고개를 돌려 연선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은 경멸과 혐오감, 분노와 짜증이 뒤섞여 일그러져 있었다.
마치 더럽고 징그러운 벌레를 보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수치심과 배신감을 견디지 못한 연선은 그날 저녁 학교에서 자살했다.
하지만 그녀가 자살한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이 없었다.
Y고교의 무용부는 유명한 무용수들을 배출한 곳으로 명성이 높았다.
미래의 발레리나를 꿈꾸는 수많은 인재들이 Y고교 무용부에 모여서 경쟁을 했다.
그 중에서 예은, 예지 쌍둥이 자매의 실력은 가장 돋보였다.
사람들은 둘 다 무용계를 이끌 큰 인재가 될 것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좀 더 좋은 평가를 받는 쪽은 늘 동생 예지 쪽이었다.
신체 조건이나 기교에 있어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지만,
표현력에 있어서 예지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대부분의 평가였다.
처음엔 예은은 그런 평가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비슷한 평가가 계속되고, 몇 번 주연 역할을 예지에게 뺏기게 되자, 점점 신경이 쓰이고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학예외 시기가 다가왔다.
Y고 무용부의 작품은 언론에서도 다룰 만큼 외부의 관심이 집중되는 기회의 자리였다.
거기서 주연을 맡는다는 것은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신인으로 데뷔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학교에서는 오디션을 통해 공정하게 주연을 선정하기로 했다.
오디션 전날이었다. 예은은 초조한 얼굴로 무용실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녀는 고민 중이었다.
이번에도 예지에게 주연을 뺏기면,
자신은 평생 동생의 그늘 속에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녀를 사로잡고 있었다.
긴 시간 고민하던 그녀는 마침내 결심을 한 듯, 유난히 반짝거리는 발레슈즈를 들고 무용실을 떠났다.
다음날 오디션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예지가 연기를 펼치던 중 쓰러진 것이다.
그녀의 발은 유리조각에 찔려 피범벅이 되었다.
결국 주연의 영광은 언니인 예은의 차지가 되었다.
그 뒤 예은은 완벽한 공연을 통해, 단숨에 모두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언론에선 새로운 천재의 등장이라며, 연일 그녀에 대한 특집 기사를 다뤘다.
유명 발레단에서도 졸업하자마자 오라며 러브콜을 보낼 정도였다.
반면 예지는 실의에 빠져 점차 생기를 잃어갔다.
완전히아물기도 전에 연습을 시도하는 바람에 상처가 다시 악화되는 일이 수차례 반복되었다.
그리고 결국엔 상처가 오염되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예은은 노래가 끝나자 잠시 연습을 멈추고 바닥에 앉아 땀을 닦았다.
다른 학생들은 모두 집에 돌아가고 남은 사람은 자신 뿐이었다.
옛날이었다면 예지가 같이 있었겠지만..
순간 동생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섬뜩한 기분이 든 그녀는 얼른 머릿속에서 그 생각을 지웠다.
다시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예은은 일어나 거울 앞에 섰다.
그런데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서 뭔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거울 속 자신이 신고 있는 발레슈즈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예은은 놀라서 자신의 발을 바라봤지만 자신이 신고 있는 것은 새하얀 발레슈즈였다.
그때였다.
“지금까지 내가 언니를 따라 해줬으니까, 이젠 내 차례야. 날 따라 해 봐.”
붉은 발레 슈즈를 신은 거울 속의 예은이 손을 천천히 목으로 가져갔다.
그녀는 무척이나 즐겁다는 듯 웃고 있었다.
소희는 어려서부터 유난히 벌레를 싫어했다. 특히 거미는 그녀가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녀가 다니는 Y고등학교는 산 밑에 오래된 건물이라, 각종 벌레나 거미가 많았다.
그 때문에 그녀는 이만저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소희는 3학년이 되는 것이 무척 반가웠다.
1, 2학년 교실과 달리 3학년 교실은 새로 지은 건물에 있었기 때문이다.
새 건물인 만큼 벌레도 없고,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3학년이 된 그녀의 반에는 좀 특이한 여학생 한 명이 있었다.
긴 머리카락이 얼굴 대부분을 가리고 있어 상당히 음침해 보이는 인상의 아이였다.
소희는 1, 2학년 땐 그 아이를 본 기억이 없었다. 우리 학교에 저런 애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생소한 얼굴이었다.
그 아이는 다른 애들과 떨어진 구석 자리에 앉아 거의 움직이는 법이 없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 시간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소희는 이상하게 그 학생이 계속 신경 쓰였다.
어느 여름 날의 따분한 수업시간이었다.
도무지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던 소희는 무심코 그 학생의 자리를 바라봤다.
그런데 그 아이가 나방 같은 것을 십어 먹고 있었다. 기겁한 소희가 다시 그 아이를 보자 멀쩡했다.
소희는 날이 더워서 자신이 헛것을 보았구나 생각했다.
그때 소희의 시선을 느낀 그 아이가 소희를 보며 희죽 웃었다.
왠지 모르게 소름 끼치는 그 모습에 소희는 저점 그 아이가 무서워졌다.
그 뒤로 한동안 그 아이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처음엔 신경이 쓰였지만, 시간이 흐르자 소희도 곧 잊어버렸다.
어느 날, 소희는 집으로 가던 중 교실에 두고 온 물건이 생각이 나서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아까 전만 해도 하교하는 아이들로 시끄러웠던 학교는 어느 틈엔가 고요해져 있었다.
소희는 교실로 돌아와 불을 켰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는 빈 책상과 의자들뿐이었다.
그런데 맞은 편 교실 구석에 뭔가 검은 것이 늘어진 게 보였다.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던 소희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그것은 천장에서부터 내려온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었다.
그리고 머리카락의 주인은 한동안 보이지 않던 그 아이였다.
그 아이는 기괴한 모습으로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마치 거미 같은 모습이었다.
소희를 발견한 그 아이는 천장에 달라붙은 상태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거미줄처럼 펼쳐져 소희를 붙잡아 끌어올렸다.
곧 교실의 불이 꺼지고, 어둠 속에서 끔찍한 소리가 들렸다.
다음 날부터 소희의 모습을 학교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교실 천장 구석에 거미줄을 치고 있던 거미 한 마리도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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